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단순한 블랙코미디를 넘어 현대 사회의 고용 불안과 남성 정체성의 붕괴를 날카롭게 해부한 작품입니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20년 경력의 제지업 전문가 유만수가 갑작스러운 해고 후 구직 경쟁자들을 제거하려는 극단적 선택으로 몰려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병헌과 손예진의 열연, 그리고 박찬욱 특유의 정교한 미장센이 어우러져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스크린에 펼쳐냅니다.
이병헌 연기로 완성된 몰락하는 가장의 초상
이병헌은 유만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경력의 정점을 찍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영화는 태양제지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펄프맨상까지 받은 안정된 가장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파란 하늘 아래 마당에서 가족과 바비큐를 즐기며 "다 이루었다"고 말하는 만수의 표정에는 중년 남성이 바라는 완벽한 행복이 담겨 있습니다. 미혼모였던 아내, 첼로 신동인 딸, 두 마리의 반려견까지 갖춘 그의 삶은 더할 나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계 사모펀드의 인수 후 구조조정으로 해고 통보를 받는 순간부터 이병헌의 연기는 섬세한 변주를 시작합니다. 초조함, 당혹감, 분노, 절망이 얼굴의 미세한 근육 하나하나를 통해 전달됩니다. 면접장에서 "싫은데요"라고 답하며 무너지는 장면, 허위 구직 광고를 내고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등급별로 분류하는 장면에서 그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집니다. 대사보다 클로즈업된 표정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이 장면들은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자신의 카리스마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며 평범한 아저씨의 비참함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구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구두 가게 점원이 된 전직 제지업 동료 고시조를 만나는 장면은 만수의 내면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살해 대상으로 찾아갔지만 같은 처지에 놓인 그를 보며 동질감과 연민이 교차하는 순간, 이병헌은 선한 본질을 지녔으면서도 도덕적 타협 끝에 폭력으로 향하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한 장면에 압축합니다. "당신이 사라져야 내가 살아"라며 스스로를 세뇌하듯 반복하는 "어쩔 수가 없다"는 주문은 위선적 합리화의 극치이자, 현대인이 자주 사용하는 책임 회피의 언어입니다.
| 연기 포인트 | 장면 | 표현 방식 |
|---|---|---|
| 안정된 가장 | 바비큐 장면 | 여유로운 표정, 만족스러운 눈빛 |
| 해고 후 불안 | 면접 장면 | 초조한 몸짓, 떨리는 음성 |
| 도덕적 타협 | 살해 계획 장면 | 어두워진 눈빛, 경직된 표정 |
손예진이 연기한 아내 미리는 영화의 정서적 균형추 역할을 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직시하고 현실적 판단을 내리는 인물로, "당신도 새 출발했잖아. 당신도 할 수 있어"라며 남편을 다독이면서도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하자는 현실적 제안을 합니다. 화면 속 그녀의 존재감은 단순히 남편을 지지하는 조연이 아니라, 가족의 운명을 실질적으로 조율하는 주체로 기능합니다.
박찬욱 연출, 공간으로 말하는 몰락의 건축학
박찬욱 감독은 건축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간 활용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감독입니다. F.W. 무르나우가 말한 "중요한 것은 스크린 위에 보이는 것"이라는 영화적 철학을 충실히 따르며, 알프레드 히치콕의 미장센을 깊이 탐구한 그의 작품 세계에서 건축은 곧 영화적 언어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에서 등장하는 세 남자의 저택과 공간은 각각 중년 남자의 로망, 고립, 억눌림, 과시욕을 구체화합니다. 만수가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다시 사서 직접 손본 저택은 그가 이룬 성취의 상징입니다. 창고, 베란다, 원실 하나하나에 그의 땀과 추억이 배어 있습니다. "나 아홉 살 때부터 평균 일 년에 한 번씩 이사 다니면서 이 집 갖겠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라는 대사는 공간이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정체성 그 자체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3억이 넘는 대출과 함께 이 집은 점차 그를 짓누르는 감옥으로 변합니다. 문재의 반장 최선출의 집은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만수가 그를 만나러 올라갈 때 뱀이 등장하는 장면은 불길한 암시를 던집니다. 알코올 중독자 구범모의 집에서는 총을 두고 아내와 몸싸움을 벌이는데, 이 장면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음악과 함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연출됩니다. 각 공간은 인물들의 내면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은 공간을 통해 캐릭터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읽게 됩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정교한 카메라 워크는 긴장과 불안을 증폭시킵니다. 해고 통보 장면에서 미국 본사 경영주들의 차가운 표정, 면접장에서 AI 자동화 시스템을 설명하는 장면의 불 꺼진 공장, 로봇이 종이를 옮기는 모습은 인간 노동의 무의미함을 상징합니다. 마지막 면접 자리에서 만수가 "적어도 한 명 정도는 필요하지 않냐"며 자리를 얻는 장면은 뼈아프게 슬픈 승리입니다. 결과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잃은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구범모 내외와의 총 쟁탈전, 고시조와의 구두 가게 대화, 최선출과의 음주 장면 등을 통해 폭력과 연민, 코미디와 비극을 절묘하게 버무립니다. 특히 최선출과의 음주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리얼한 만취 연기"로 평가받으며, 박희순 배우의 연기와 함께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 모든 장면들이 스타일리시하고 예술적인 체험으로 이어지는 것은 박찬욱이 언제 무엇을 넣어야 효과적인지를 정확히 알고 구사하는 악마적 재능 덕분입니다.
실직 가장의 비극, 자본주의의 도끼질
영화의 핵심은 "왜 우리는 직장을 잃으면 존재론적 위기에 빠지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만수에게 제지업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25년간 쌓아온 정체성입니다. "난 이렇게 살게 돼 있어, 어쩔 수가 없어"라는 그의 대사는 직업과 자아가 완전히 일치된 상태를 보여줍니다. 아내는 음악 카페를 내자고 제안하지만 그는 "종이가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합니다. 이는 베트남전 참전 후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버지의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사회는 필요할 때 역할을 주고, 필요가 사라지면 가차 없이 버립니다. 해고는 "도끼질"로 비유됩니다. 미국 본사 직원이 "미국에서는 해고를 도끼질한다고 그런다면서요. 한국에선 뭐라 그러는지 아세요? 넌 뭐 하지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섬뜩합니다. 도끼는 영화 전체에서 해고이자 살인을 상징하는 이중적 기호로 작동합니다. 만수가 경쟁자들을 제거하려 할 때 사용하는 것도 도끼이며,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주문처럼 반복됩니다. 하지만 영화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어쩔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집을 팔 수도,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수도, 아내가 커리어를 살릴 수도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인 장인에게 반려견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수는 이 모든 선택이 자신이 누리던 삶과 멀어지는 방법이라고 여기며 비열한 폭력의 길을 택합니다. 이는 가부장적 자존심과 남성성의 붕괴를 견디지 못하는 현대 남성의 취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만수의 살해 계획은 매번 실패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구범모 부부와의 총 쟁탈전은 슬랩스틱 코미디가 되고, 고시조를 만났을 때는 연민이 교차하며, 최선출과는 술을 마시며 동병상련의 감정을 나눕니다. "보통의 아재"인 만수의 계획이 제대로 될 리 없고, 그 서툰 폭력이 오히려 더 비극적으로 다가옵니다. 휴대폰을 훔친 10대에게 "친구가 그런 거라고" 협박하고,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며 가정의 균열을 일으키는 장면들은 살인보다 더 타락적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어쩔 수가 없다"는 주문 밖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 대상 | 직업/상태 | 공통점 |
|---|---|---|
| 유만수 | 태양제지 20년 경력, 해고 | 제지업 종사, 몰락 |
| 구범모 | 알코올 중독, 실직자 | 제지업 종사, 몰락 |
| 고시조 | 일본 제지업계 경력, 구두 가게 점원 | 제지업 종사, 몰락 |
| 최선출 | 문재 특수지 라인 반장 | 제지업 종사, 현재 유지 |
마지막 장면에서 만수는 레드페퍼 페이퍼에 취직합니다. 하지만 로봇이 종이를 옮기는 불 꺼진 공장에서 "이젠 됐다"며 쾌재를 부르는 그 순간은 공허합니다. AI와 자동화가 지배하는 공장에서 인간은 "적어도 한 명 정도"만 필요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노동자를 수십 년간 삼켰다가 한순간에 내뱉는 잔혹함을 고발하며, AI 시대의 공포를 현재형으로 겹쳐 놓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겉으로는 블랙코미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비극적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차승원 등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와 박찬욱 감독의 정교한 연출이 만나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스크린에 펼쳐냅니다. 화려한 영상미와 치밀한 구성 덕분에 몰입도는 높지만,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남는 감정은 통쾌함이 아니라 묵직한 허무입니다. 지금 시대의 고용 불안과 남성 정체성의 취약함을 날카롭게 건드리는 이 작품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어둡고 기묘한 현대인의 초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원작은 무엇인가요?
A.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소설 '더 액스(The Ax)'가 원작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이경미, 돈 맥로, 이자애와 함께 현대적 맥락에 맞게 각색했으며, 한국 제지 산업과 고용 불안을 배경으로 재구성했습니다.
Q. 이병헌의 연기가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이병헌은 안정된 가장에서 불안에 떨고 결국 폭력으로 치닫는 평범한 중년 남성의 모습을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했습니다. 자신의 카리스마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며 서툰 범죄자의 비참함을 연기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Q. 박찬욱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A. 박찬욱 감독은 공간과 건축을 활용한 정교한 미장센으로 유명합니다. 각 장소가 인물의 심리와 상황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향을 받은 치밀한 카메라 워크와 색감 활용이 돋보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에서도 저택, 공장, 면접실 등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요 요소로 기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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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리뷰를 안 볼 수가 없다..!💥" 박찬욱, 이병헌의 ≪어쩔수가없다≫ 하이라이트 + 리뷰 / 기묘한 케이지: https://www.youtube.com/watch?v=77Yes279dV8